우울증은 그저 항상 슬픈 상태가 아니다. 대개는 마비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감정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었다고 느낀다. 희망이 없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을 만큼 절망적이다. 예전에 재밌어했던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 음식도, 친구도, 취미도, 기력도 급속도로 떨어진다. 모든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유를 설명하기도 힘들다. 어떤 일도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낀다. 잠들기 어렵고, 잠들더라도 계속 잠든 상태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아픔과 통증을 훨씬 극심하게 느낀다. 집중이 안 되고, 불안하고, 수치스럽고 외롭다. 우울증의 하강나선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기분을 저조하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저조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아주 안정적인 상태다.
만약 우울증에 걸려 있으나 이 글을 읽을 만큼은 건강하다면, 뇌의 회로를 재배선하고 우울증의 진행 방향을 뒤집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셈이다. 사람들은 모두 동일한 뇌 회로를 갖고 있으므로 우울증에 걸렸든, 불안증에 걸렸든, 어딘가 아프든, 그냥 잘 지내고 있든 누구나 똑같은 신경과학을 활용해 자기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
골치 아프게도 우울증은 단순히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 도파민이 부족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신경전달물질들의 수치를 높여주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도 해결책의 일부이기는 하다. 세로토닌 활동이 늘어나면 기분이 더 좋아지고 목표를 세우는 능력과 나쁜 습관을 피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노르에피네프린이 증가하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도파민이 많아지면 전반적으로 훨씬 더 즐거워진다.
우울증은 사람을 고립시키는 병이다. 사람들 곁에 있어도 혼자 외로이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사람들과 아예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처럼 고독을 바라는 상태는 우울증에 걸린 뇌가 보이는 증상 가운데 하나이다. 운동하기 싫은 마음이 운동하지 않는 상태를 고착시키는 것처럼 고독을 바라는 마음은 우울증을 더 고착시킨다. 이 책이 주는 뇌 과학의 매우 중요한 원리 중 하나는 아무리 혼자 있고 싶더라도 우울증을 치료할 희망은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 회로들은 마치 환경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그물망이며, 때로는 매우 취약한 생태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울증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울증이 나선을 그리며 하강 운동을 시작하면 모든 것이 함께 악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의 작은 변화 몇 가지만으로도 그 흐름을 뒤집을 수 있다. 뇌가 상승 나선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뇌라는 생태계의 탄력성이 점점 더 좋아져 앞으로 우울증이 생길 가소성을 예방할 수 있다.
자신의 뇌가 불확실성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 반응에 따라 감정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애를 시작하거나 직장을 바꿀 때 뇌가 자동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나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잘 모르는 상황일 뿐 나쁜 상황은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든 좋은 직업이든 가치 있는 무언가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거의 대부분 어느 정도 불확실한 시기를 거쳐야만 한다. 미비의 것 너머에 있을지 모를 기막힌 보상을 놓치지 않으려면 뇌가 모르는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왜곡할 수 있음을 늘 감안해야 한다.
우울증에 걸리면 대개 집중하거나 깊이 사고하기가 어려워지는데 이는 주로 노르에피네프린계가 힘없이 처져서 생기는 증상이다. 그 때문에 노르에피네프린은 항우울제가 세로토닌 다음으로 가장 많이 타깃으로 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강도높은 운동은 노르에피네프린을 늘린다. 또한 도파민계에 영향을 미쳐 중독증상을 줄인다. 격렬한 운동을 하면 엔돌핀도 늘릴 수 있다.
생활이 긍정적으로 변하면 신경도 따라서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더불어 뇌의 전기 활동과 화학적 구성, 심지어 새 뉴런을 만드는 능력까지 달라진다. 이렇게 뇌가 변하면 뇌회로가 다시 조율되어 또 다른 긍정적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운동을 하면 수면 시 뇌의 전기 활동에 변화가 일어나고, 이는 다시 불안을 줄이고 기분을 향상시켜 운동할 수 있는 에너지를 더 많이 만들어낸다. 이와 유사하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면 세로토닌이 생성되어 이것이 다시 기분을 좋게 하고 나쁜 습관을 떨치게 도와주어 고마워할 일이 더 많이 생긴다. 어떤 작은 변화라도 뇌가 상승나선의 시동을 거는 데 필요한 바로 그 힘이 될 수 있다.
스트레스는 의도에 따라 행동하기보다는 예전에 하던 습관대로 행동하도록 뇌를 편향시킨다. 우리가 스트레스에 대처하기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 곧 대처 습관을 고치기 어려운 이유중 하나다. 대처 습관의 난처한 점은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차 있는 상태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대처 습관을 억제하려 하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그러면 뇌는 더욱더 대처 습관대로 행동하고 싶어 한다. 이는 명백한 하강나선이다. 이를 해결할가장 좋은 방법은 스트레스를 줄일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든 좋은 직업이든 가치 있는 무언가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거의 대부분 어느 정도 불확실한 시기를 거쳐야만 한다. 미지의 것 너머에 있을지 모를 기막힌 보상을 놓치지 않으려면 뇌가 모르는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 왜곡할 수 있음을 늘 감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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